'실력으로 정면돌파' 박지원과 '반칙왕' 불명예 얻은 황대헌…극명한 희비
대한민국 쇼트트랙 대표팀 박지원(왼쪽)과 황대헌이 1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2024.3.19/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팀 킬' 논란으로 주목받았던 쇼트트랙 박지원(28·서울시청)과 황대헌(25·강원도청)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팀 킬의 '피해자'인 박지원이 실력으로 정면 돌파에 성공한 반면, '가해자'로 질타받던 황대헌은 국가대표 승선에 실패했다.
12일 서울 양천구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끝난 2024-25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 2차 선발전을 통해 차기 시즌 국가대표로 활약할 선수들이 최종 결정됐다.
이번 선발전엔 여느 때보다 많은 관심이 집중됐다. 선발전을 앞두고 국제대회에서 한국 선수들끼리 잇따라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열린 세계선수권에 나란히 출전한 박지원과 황대헌은 1500m, 1000m 결선에서 연달아 맞붙었다. 황대헌의 반칙이 인정돼 실격 처리됐지만, 속도가 죽은 박지원은 '구제'를 받을 수 없었다. 결국 박지원은 세계선수권 금메달의 목표를 이루지 못해 차기 시즌 국가대표 '자동 승선'의 기회를 놓쳤다.
황대헌(왼쪽·강원도)아 박지원(오른쪽)이 7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실내빙상장에서 열린 '2024-2025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 1차 선발대회' 1000m 예선에서 각각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2024.4.7/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문제는 박지원이 처한 상황이었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빛을 보기 시작한 박지원은 아직 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내년엔 동계 아시안게임이 8년 만에 열리고, 여기서 금메달을 따면 병역 혜택을 받은 뒤 2026년 열리는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까지 노릴 수 있었다.
박지원은 '바늘구멍 뚫기'와도 같은 국대 선발전을 다시 치러야 하는 상황이 됐고, 황대헌은 이미 군 면제로 차기 시즌 국가대표가 절박하지는 않은 입장이었다.
황대헌의 반칙 장면과 함께 박지원의 상황까지 조명되며 여론은 들끓었다. 특히 황대헌이 세계선수권이 끝난 직후 귀국 현장에서도 특별한 사과의 제스처를 보이지 않으면서 비난의 목소리는 더 거세졌다.
박지원은 여론의 동정을 받는 입장이었지만, 그럼에도 선발전을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황대헌에게 반칙을 당하면서 경미한 부상도 입었고, 무엇보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은 압박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박지원(흰색 헬멧·서울시청)이 11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실내빙상장에서 열린 '2024-2025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 2차 선발대회' 남자부 1500m 결승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환호하고 있다. 왼쪽 적색 헬멧은 황대헌. 2024.4.11/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하지만 박지원은 실력으로 정면돌파했다. 1차 선발전 500m 준결선에서 황대헌과 또 한 번 충돌(정상 플레이)하며 뒤처졌지만, 이튿날 1000m 우승으로 1위로 올라섰다.
이어진 2차 선발전에선 1500m 우승으로 일찌감치 개인전 출전권을 확보했고, 마지막 날 여유 있게 경기를 마쳤다.
껄끄러운 황대헌과의 맞대결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박지원은 개의치 않았다. 11일 1500m 결선에선 압도적인 스피드를 과시하며 1위를 차지한 뒤 포효하기도 했다.
최대 고비를 넘긴 박지원은 내년 아시안게임, 내후년 올림픽 등 원래 계획으로 돌아와 다시 준비한다.
그는 "중요한 대회일수록 하던 대로 해야 한다"면서 "이번 선발전 때 그랬듯 꾸준하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황대헌(빨간색 헬멧·강원도청)이 12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실내빙상장에서 열린 '2024-2025시즌 쇼트트랙 국가대표 2차 선발대회' 남자부 1000m 준준결승 코너링에서 넘어진 뒤 항의하고 있다. 2024.4.12/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반면 황대헌은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세계선수권에서의 잇따른 반칙으로 민심을 잃은 것은 물론, 이번 선발전에서도 1차 선발전 1000m, 2차 선발전 500m 등 두 번이나 반칙으로 실격당해 '반칙왕'의 오명을 썼다.
최종 점수가 13점에 불과한 황대헌은 결국 11위에 그치며 8위까지 주어지는 차기 시즌 국가대표 승선의 기회를 놓쳤다. 2022 베이징 올림픽 이후 1년을 쉬었다 복귀했던 그는 다시 태극마크를 반납하게 됐다.
물론 황대헌에게 2024-25시즌은 박지원만큼 간절하지는 않다. 이미 병역 면제를 받은 그로서는 오히려 휴식과 재충전을 통해 내후년 '올림픽 시즌'을 겨냥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문제는 완전히 등을 저버린 팬심이다. 대표팀 선배였던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과의 '성추행 논란'을 거쳐 2022 베이징 올림픽에서 중국의 편파 판정을 딛고 금메달을 땄을 때만 해도 그는 '쇼트트랙 영웅'이었다.
하지만 불과 2년 사이 상황은 완전히 반전됐다. 논란의 상황을 만들고도 후속 조치가 아쉬웠던 황대헌은 점점 돌아오기 힘든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황대헌은 다시 한번 기량을 되찾고 돌아선 팬심도 되돌릴 수 있을까. 그것은 황대헌 본인에게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