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 기회 날린 손… 그래도 팬들은 즐거워
토트넘, 맨시티에 져 4위 꿈 좌절
15일(한국 시각) 토트넘과 맨체스터 시티(맨시티)가 맞붙은 2023-2024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34라운드. 순연 경기로 열린 이날 후반 6분 맨시티 공격수 엘링 홀란이 페널티박스 오른쪽을 돌파한 케빈 데브라위너가 내준 공에 왼발을 갖다대 선제골을 터뜨린 뒤 토트넘 홈 구장 관중석에서 “아스널! 보고 있나!”란 구호가 나왔다. 홈 팀이 지고 있는데 의아한 반응이었다.
토트넘이 0-1로 뒤진 후반 41분. 손흥민이 맨시티 골키퍼 슈테판 오르테가와 일대일로 맞서는 동점 기회를 잡았다. 결정적 기회에서 손흥민이 오른발로 낮게 깔아 찬 슛을 오르테가가 다리로 막아내면서 관중석에선 탄식이 터졌다. 그런데 일부 토트넘 팬들은 소셜미디어에 ‘손흥민은 토트넘 레전드’ ‘주장답게 잘 찼다’ ‘그는 나의 영웅’ 등 글을 올리며 기뻐했다. 토트넘은 후반 추가 시간 홀란에게 페널티킥 골을 내주며 결국 0대2로 졌다.
이런 생경한 장면은 사실 토트넘과 연고지가 같은 북런던 라이벌 아스널 탓에 벌어졌다. 이 경기 전까지 아스널과 맨시티는 치열한 우승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아스널이 승점 86, 맨시티는 85. 맨시티가 토트넘전에서 비기거나 졌다면 승점이 86 또는 85가 되면서 두 팀 모두 1경기씩 남겨 놓은 상태에서 아스널에 유리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었다. 실제 이 경기를 앞두고 영국 스카이스포츠가 토트넘 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아스널 우승을 막기 위해 맨시티에 지는 게 나을까?’란 질문에 56%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문제는 토트넘도 4위까지 주어지는 다음 시즌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출전권을 따기 위해선 반드시 이 경기를 이겨야 했다는 것. 4위 애스턴 빌라(승점 68)를 승점 5 차로 추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경기를 이겨 승점 66을 확보한 다음 마지막 경기에서 ‘경우의 수’을 따져볼 수 있었으나 결국 지면서 남은 1경기에 상관 없이 4위 탈환에 실패했다.
이런 지경인데도 아스널 우승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는 팬들 염원은 어느 정도 이뤄졌다. 안지 포스테코글루 토트넘 감독은 “이런 분위기가 우리 선수들에게 영향을 줬을 것”이라며 “홈 관중이 맨시티 쐐기골을 도왔다”고 투덜댔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맨시티는 토트넘을 꺾고 승점 88(27승7무3패) 고지를 점령하면서 이제 남은 1경기를 이기면 자력으로 리그 정상에 오른다. 아스널은 승점86(27승5무5패)이다. 올 시즌 EPL은 오는 20일 자정 펼쳐지는 38라운드에서 최종 순위가 판가름 난다. 맨시티는 웨스트햄을 누르면 사상 첫 EPL 4연패(連覇) 위업을 이루게 된다. 20년 만에 EPL 정상 등극을 노리는 아스널은 자력 우승은 물 건너갔고, 에버턴을 일단 꺾고 나서 맨시티-웨스트햄 결과를 봐야 한다. 그런데 9위 웨스트햄 팬들 역시 런던이 연고라 지역 맞수 아스널이 우승하는 걸 바라지 않는다. 맨시티에 져도 상관없다는 태도다.
올 시즌 EPL에서 17골 9도움(득점 7위, 도움 9위)을 기록 중인 손흥민은 후반 막판 결정적 기회를 놓치면서 아쉬움을 삼켰다. 그는 과르디올라 감독 체제 맨시티를 상대로 그동안 8골 4도움으로 강한 모습을 보였다. 손흥민이 골키퍼와 단독으로 맞서자 놀란 나머지 그라운드에 드러누웠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지난 7~8년간 손흥민이 우리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아느냐”며 “오르테가가 손흥민의 슈팅을 막지 못했다면, 아스널이 챔피언이 될 운명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토트넘 덕분에’ 애스턴 빌라는 이날 4위를 확정하며 41년 만에 UCL 진출 꿈을 이뤘다. 우나이 에메리 감독과 선수들, 구단 관계자들은 홈 구장 빌라파크에서 토트넘 경기를 지켜본 뒤 함께 환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