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비사] 北 목수와 러시아 여인의 '금지된 사랑'
1993년 2월 어느 날, 러시아 하바롭스크 외국인등록처. 북한에서 러시아로 파견된 목수 김장운은 옷장과 벽 사이 구석에 숨어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오늘은 그의 러시아 체류허가 판결이 내려지는 날이었다. 김장운과 결혼한 러시아 여인 마르가리타는 애써 태연한 모습이었다. 김장운이 몸을 숨겨야 했던 이유는 명확했다. 그는 1992년 8월 23일 하바롭스크 북한 임업대표부에서 탈출한 '반역자'였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김장운의 체류허가는 승인되지 않았다. 외국인등록처장은 "북한 사람이라면 어떠한 신청도 받지 않는다"며 마르가리타를 돌려세웠다. 두 달 동안 물밑에서 외국인등록처를 설득했던 마르가리타에게는 날벼락과 같은 일이었다. 그나마 위안은 김장운이 직접 체류허가를 신청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당시 북한의 '정치 경찰' 사회안전부는 김장운을 찾아내기 위해 두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만일 김장운이 외국인등록처를 방문했다면 그는 곧바로 붙잡혀 북한으로 끌려갔을 것이다.
러시아 체류가 무산된 김장운은 다른 방법을 찾기에 앞서 자살극을 꾸미기로 했다. 북한에 남아 있는 모친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조국을 등진 아들을 뒀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벌을 받게 되리란 건 자명했다. 김장운은 아무르강변에 옷과 신분증을 남기고 사라졌다. 하지만 북한 사회안전부는 김장운의 뒤를 집요하게 밟았다. 북한이 김장운 송환을 위한 지원을 러시아에 공식 요청하면서 러시아 안전부(전 KGB)와 교통경찰도 그를 찾아 나섰다.
북한 사회안전부 요원들은 김장운의 소재지를 알아내기 위해 마르가리타를 압박했다. 그녀는 물론 친자매, 친구들 모두 감시 대상이 됐다. 요원들은 마르가리타를 미행하고 자택에 무단으로 침입하는 한편, 집 주변에 관측소까지 만들어 김장운 찾기에 주력했다. 한 요원은 한국인으로 위장해 마르가리타에게 접근하기도 했다. 러시아 안전부 요원들도 마르가리타 집을 급습해 침대와 옷장을 샅샅이 뒤졌다. 같은 시기 김장운의 동료들은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했다.
외교부가 관련 동향을 확인했을 때는 1993년 2월 5일이다. 주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은 러시아 주간지 '젊은 극동인'에서 조만간 김장운에 대해 보도할 예정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후 총영사관은 한국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김장운과 마르가리타의 서한을 확보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89년 김장운은 건설근무를 위해 북한에서 왔습니다. 저희는 서로 알게 되고 서로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북한법에 따르면 외국인과의 사랑 또는 결혼은 금지됩니다. 그래서 저희는 등록하지 못하고 비밀리에 결혼했습니다. 1992년 8월 23일에 그는 북한 작업장을 떠나 지금까지 숨어 살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장운을 찾으면 국가 반역죄로 총살할 것입니다. 그는 조국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저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을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 저희는 행복한 가정을 창조했습니다. 아마 김장운은 한국 공민권을 더 쉽게 또는 빨리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우리나라가 문제없이 저희 사랑하는 김장운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저도 김장운 없이는 못 삽니다. 귀하의 선처를 바라면서 귀하의 대답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