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사망 전 남편의 마지막 식사 ‘김치김밥’을 말다 [은유의 ‘먹고사는 일’]
김영희씨(60)는 부산 사투리의 활달한 어조로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서도 재빠른 손놀림으로 참외 서너 개를 깎아서는 접시에 뚝딱 담아낸다. 단물이 밴 참외를 포크로 찍어서 취재진의 입 가까이 건네는 와중에도 그는 못내 아쉽다. “수박도 좀 사놓을 걸 그랬네. 수박이 없어서 우짜노.”
한평생 짝을 이루어 살던 영희의 배우자 ‘철수’는 고 정순규씨다. 2019년 10월31일 부산 남구 경동건설 아파트 신축현장에서 작업 중 추락해 숨졌다. 이 말은 제철 과일을 깎아놓고 무심하게 건네던 사십 년 옆지기가 사라졌다는 뜻이고, 영희가 하루아침에 산재 피해 유가족이 되었다는 말이다. 또 한국 사회에서 유가족이 된다는 건 사망 원인을 죽은 사람의 과실로 몰아가는 사용자 측과 질긴 싸움을 시작한다는 것이고, 사람이 일하다가 죽었는데도 기업은 벌금만 내면 그만인 잔인한 현실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황망한 일상에서 그가 의지한 것은 부처님과 죽은 남편이다. 그리움에 목메는 날이면 유튜브로 법문 들으며 마음을 달래고,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내려오는 길목에 있는 납골당에 들렀다. 거의 매주 남편을 만나서 하소연을 한바탕 풀어놓고 밤마다 울면서 잠들었다. 어느덧 5년이 흘렀다. 이제 영희는 ‘철수’에게 차려준 마지막 밥, 그러니까 사고 당일 고인이 먹은 ‘마지막 김밥’ 이야기를 눈물 없이 꺼낸다.
“남편이 새벽 5시40분쯤 나가요. 그럼 저는 5시10분쯤 일어나죠. 눈 뜨고 바로 먹으면 입맛이 없으니까 가면서 먹으라고 김치김밥을 싸요. 밥에 참기름 넣어서 맛소금 약간 뿌려 김 위에 깔고 김치 한 줄 넣고. 게맛살이나 소시지는 있으면 넣고 없으면 패스. 김치를 꼭 짜서 넣죠. 거창 김치예요.”
아는 형님이 거창에서 사과 농장을 한다. 고랭지라서 사과가 맛있고 배추도 맛있다. 바쁠 때 일손을 거들어주고 1년 먹을 김치를 얻어오곤 했다. 그날도 맛깔스러운 거창 김치를 길게 쭉쭉 찢어 넣고 김밥을 말아서 출근하는 남편 손에 들려 보냈다. 사고가 나고 며칠 후, 옷과 신발 등 유품이 담긴 쇼핑백을 챙겨 오는데 그 속에서 플라스틱 김밥통이 달그락거렸다. 다행히 김밥은 남아 있지 않았다. 든든한 속으로 떠난 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텅 빈 통을 보자 눈물이 났다. 늘 말이라도 “느그 엄마 해주는 게 젤 맛있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고, 애들에게는 “느그 엄마 눈물 나게 하면 죽는다”라고 다정한 엄포를 놓던 사람 대신 ‘락앤락’ 김밥통만 돌아온 것으로 남편의 부재는 현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