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 팩스턴 1년 160억 다저스 계약, 기준점 생겼다… 류현진 1000만 달러는 무난? 한화 복귀 멀어지나
2023-2024 메이저리그 오프시즌의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이 더디지만 그래도 조금씩 흘러가고 있다. 불펜 최대어였던 조시 헤이더가 휴스턴과 계약한 것에 이어, 단년 계약 후보였던 선발 투수들도 하나둘씩 계약을 하고 시장을 빠져 나가는 양상이다. 류현진(37)도 아직 시장에 남아있지만 급할 것은 없다는 분위기다. 오히려 시장 흐름이 비교적 무난하다는 것을 확인한 채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23일(한국시간) 메이저리그 오프시즌의 최대 이슈는 베테랑 좌완 제임스 팩스턴(36)과 LA 다저스의 계약이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MLB.com) 등 현지 언론들은 팩스턴과 다저스가 1년 총액 1200만 달러(약 160억 원) 수준에서 계약을 앞두고 있다고 23일 일제히 보도했다. 다저스가 추가적인 선발 영입에 나섰다는 것도 다소 놀라운 일이었고, 여기에 그 대상이 팩스턴이라는 점 또한 많은 관심을 모았다.
팩스턴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좌완 투수이기는 하지만, 위험 요소가 크다는 지적 속에 1월 중순까지도 계약하지 못했던 투수였다. 일단 경력을 보면 제법 화려하다. 2010년 시애틀의 4라운드 지명을 받은 팩스턴은 일찌감치 선발 유망주라는 평가를 받으며 2013년 시애틀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이후 메이저리그 통산 156경기에 나갔는데 모두 선발 등판이었다.
2013년 데뷔한 팩스턴은 시애틀에서 조금씩 자신의 입지를 넓히기 시작했다. 2013년 4경기, 2014년과 2015년에는 13경기에 선발로 뛰며 팀 로테이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조금씩 늘어났다. 그러다 2016년 20경기에서 121이닝을 소화하며 6승7패 평균자책점 3.79를 기록했고, 2017년에는 24경기에서 136이닝을 던지며 12승5패 평균자책점 2.98의 좋은 성적으로 팀 로테이션 한 자리를 확실하게 꿰찼다.
팩스턴은 2018년 개인 최다인 160⅓이닝을 던지며 11승6패 평균자책점 3.76을 기록한 뒤 2019년 뉴욕 양키스로 자리를 옮겼다. 트레이드 당시 시애틀이 유망주 3명을 받았을 정도로 자신의 가치가 가장 높아진 시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내리막이 시작됐다. 2019년 개인 경력 최다승인 15승을 기록하기는 했으나 부상이 시작되며 이닝 소화는 150⅔이닝에 그쳤고, 평균자책점도 3.82로 크게 뛰었다.
이후로는 말 그대로 부상과 전쟁이었다. 팩스턴은 상체와 하체를 가리지 않고 부상이 찾아오며 이를 제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2020년은 5경기 출전에 그쳤다. 시즌 전 등과 허리 쪽에 문제가 발견돼 수술대에 오른 게 결정적이었다. 2021년은 친정팀인 시애틀로 다시 자리를 옮겼으나 1경기 출전 후 팔꿈치 수술로 시즌을 그대로 날렸다.
2022년 시즌을 앞두고 보스턴과 1년 1000만 달러에 계약했으나 부상 회복이 더뎌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그대로 시즌 아웃됐다. 말 그대로 연봉을 앉아서 받은 셈이다. 팩스턴은 2023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옵션을 실행해 복귀했고, 19경기에서 96이닝을 던지며 7승5패 평균자책점 4.50을 기록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동안은 견고한 투구 수준을 유지하며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관심을 받은 것으로 풀이되며, 1년 1000~1500만 달러 수준의 계약이 예상된 가운데 결국 다저스와 1년 1200만 달러에 최종 합의에 이르렀다.
그런데 현지 언론에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무엇보다 팩스턴의 건강이다. 팩스턴은 경력 내내 이런 저런 부상이 끊이지 않았고, 그 결과 통산 64승38패 평균자책점 3.69의 투수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 바로 메이저리그 규정이닝(162이닝)을 단 한 번도 소화해보지 못한 것이다. 팔꿈치 부상에서 회복한 지난해에도 스프링트레이닝에서 햄스트링 문제가 생기며 지각 개막했다.
MLB.com도 팩스턴의 계약 소식을 전하면서 '팩스턴의 2023시즌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다시 투구를 할 수 있다는 행복감을 되찾았다. 2020~2021년에는 뉴욕 양키스와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6차례 등판한 것이 전부였다'면서 '2021년 4월에 토미존 수술을 받았고 2022년 보스턴으로 옮겼지만 1경기도 등판하지 않았다'고 팩스턴의 부상 이력을 소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저스는 팩스턴을 영입해 선발 보강에 나섰다. 다저스는 이미 이번 오프시즌에 오타니 쇼헤이, 야마모토 요시노부, 타일러 글래스나우를 영입해 대형 보강을 이뤄낸 바 있다. 테오스카 에르난데스 등 영입 선수들의 연봉 총액을 모두 합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 나온다. 그런데도 선발 투수 하나를 더 보강할 것이라는 관측이 끊이지 않았고 실제 팩스턴 영입으로 그 뜻을 이뤘다.
이유가 있다. 지난해 팔꿈치 수술을 받은 오타니는 당장 마운드에 서지 못한다. 2025년에야 등판이 가능하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투수 최고액(12년 총액 3억2500만 달러)을 새로 쓴 야마모토는 메이저리그식 등판 일정에 적응해야 한다. 일본은 일주일에 한 번만 던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탬파베이와 트레이드 후 5년 계약을 한 글래스나우도 팔꿈치 수술 경력이 있다. 이 때문에 당장은 조심히 다뤄야 한다.
기존 선수들 중에서도 워커 뷸러가 팔꿈치 수술을 받았으며 이에 뷸러는 사실상 최근 2년을 날렸다. 아직 재기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역시 관리가 필요하다. 더스틴 메이, 토니 곤솔린 등 다른 선발감들도 팔꿈치 수술 경력이 있어 아직 풀타임을 소화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에 다저스가 6인 선발 로테이션을 구축해 투수들의 이닝을 줄여주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즉, 다저스는 팩스턴이 4일 휴식 후 매번 등판할 이유가 없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던지면 된다. 이에 팩스턴의 부상 경력의 위험성을 다소 낮게 봤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1년 계약이다. 다저스는 2025년부터 오타니가 돌아올 예정이고, 선발 로테이션 진입을 대기하고 있는 젊은 선수들이 있다. 팩스턴은 올해까지만 쓰고 순리대로 빠지면 된다. 이에 다저스는 단기 계약 선수들을 필요로 했고, 그 때문에 팩스턴이나 류현진, 그리고 클레이튼 커쇼의 이름이 나왔던 측면이 있다.
한편으로 류현진으로서도 흐름이 나쁘지 않은 계약이다. 팩스턴과 비교할 만한 구석이 있는데, 오히려 따지면 류현진이 더 나은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같은 좌완인데다 나이가 비슷하다. 팩스턴이 한 살 어리기는 하지만 큰 차이는 아니다. 게다가 건강할 때의 투구 퀄리티를 보면 단연 류현진이 우위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통산 186경기에서 78승48패 평균자책점 3.27의 화려한 성적을 보유하고 있다. 1000이닝 이상을 던진 메이저리그 현역 투수 중에서는 열 손가락 안에 뽑는 성적이다. 반대로 팩스턴은 아직 메이저리그에서 단 한 번도 규정이닝을 소화하지 못했다.
최근 부상 경력에서도 팩스턴이 더 고생했으면 고생했지 류현진보다 덜하지 않다. 팩스턴은 최근 4년, 즉 2020년 이후 25경기 출전에 그쳤고, 소화 이닝은 단 117⅔이닝이었다. 그만큼 잦은 부상에 고전했다. 류현진은 최근 4년간 60경기에서 315이닝을 소화했다. 팔꿈치 수술이 있었다는 것은 동일하다. 팩스턴이 지난해 재기의 발판을 놓은 것처럼, 류현진 또한 지난해 팔꿈치 수술에서 복귀한 후 11경기에서 52이닝을 던지며 3승3패 평균자책점 3.46을 기록했다. 평균자책점에서 보듯 투구 수준은 류현진이 팩스턴에 밀린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에 팩스턴 계약이 류현진 계약의 기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팩스턴이 1년 1200만 달러 계약을 했다면, 류현진도 그와 비슷하거나 소폭 높은 계약, 못해도 연간 1000만 달러 계약은 가능하다는 평가로 읽히기 때문이다. 팩스턴의 계약에 옵션이 포함되어 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나 류현진은 옵션이나 인센티브 등 계약의 묘를 살릴 수도 있다.
최근 머네아, 마커스 스트로먼, 팩스턴 등 류현진과 비슷한 '티어'로 묶였던 선수들이 하나둘씩 계약함에 따라 이제 급해진 건 팀들이다. 선발 보강이 필요한 팀들은 여전히 많은데 시장에 선수들이 빠져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에서는 피츠버그, 마이애미, 보스턴, 볼티모어, 샌디에이고, 샌프란시스코 등이 아직 선발 보강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이들은 구단 상황이나 최근 지출 상황을 고려했을 때 남은 최대어인 블레이크 스넬이나 조던 몽고메리에 달려들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2티어 선수들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고, 결국 류현진과 마이크 로렌젠이 이제 시장에 남은 대표적인 2티어 선수들이 됐다. 류현진은 좌완, 로렌젠은 우완이다.
시장 상황이 류현진에 불리하지 않게 흘러감에 따라 2024년 한화 복귀 가능성은 더 떨어졌다. 류현진은 2013년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했고, 규약상 KBO리그로 돌아오면 친정팀인 한화로 돌아와야 한다. 류현진도 현역의 마지막은 반드시 한화에서 보낼 것이라는 뜻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이번 FA 자격 행사를 앞두고도 한화 복귀 가능성을 100% 배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서의 경력 연장이 우선이라는 뜻은 확실했고,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제안을 들어보고 결정할 뜻을 드러냈다. 그런데 연간 1000만 달러 이상을 보장받는다면 당장 한화로 돌아올 이유는 없다. 한화 복귀는 내년이나 내후년에 생각해도 되는 문제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류현진의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의 시간이 이제 찾아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보라스는 초장기전을 마다하지 않는 배짱 좋은 에이전트다. 선발 최대어인 블레이크 스넬, 외야 최대어인 코디 벨린저, 내야 최대어인 맷 채프먼이 아직도 시장에 남아있는데 모두 보라스 코퍼레이션 소속이다. 이제 급해질 시장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을 보라스의 협상력에도 기대를 걸어볼 수 있다. 보라스 코퍼레이션은 애당초 류현진 시장을 초장기전으로 예상하고 그렇게 계획을 짠 만큼 1월 말에서 2월 초로 넘어가는 시점이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