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m 버디 퍼트 놓쳐… 안병훈 통한의 준우승
마지막 퍼트에서 실수해서 실망스럽다. 하지만 골프는 72홀로 치러진다. 전체적으로 좋은 경기를 했다. 그래서 마지막 퍼트를 탓하고 싶지 않다.”
연장 접전 끝에 다섯 번째 준우승을 한 안병훈(33)은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는 듯 이렇게 말했다. 2016년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데뷔해 182경기 만에 찾아온 우승 기회가 홀 1.3m 앞에서 사라졌다.
15일 미국 하와이 오아후 호놀룰루 와이알레이CC(파70)에서 막을 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소니 오픈(총상금 830만달러). 안병훈은 이날 이글 1개, 버디 6개, 보기 2개로 6타를 줄이며 키건 브래들리(38·미국), 그레이슨 머리(31·미국)와 나란히 합계 17언더파 263타를 기록했다.
18번 홀(파5·550야드)에서 열린 첫 번째 연장에서 우승에 가장 가까웠던 이는 홀까지 1.3m 버디 퍼트를 남겨 놓은 안병훈이었다. 그런데 12m 거리에서 머리가 믿기지 않는 버디 퍼트를 먼저 성공시켰다. 머리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했다. 브래들리는 5.2m 버디 퍼트에 실패했다. 머리와 안병훈이 2차 연장전을 벌일 것으로 모두가 받아들이던 순간, 안병훈의 짧은 퍼트가 홀을 외면했다.
안병훈은 이날 4라운드 18번 홀에서도 먼저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퍼트가 말을 듣지 않았다. 242야드를 남기고 3번 아이언으로 친 두 번째 샷을 홀 4m에 붙였지만, 이글 퍼트에 성공하지 못했다. 퍼팅에 약점이 있던 안병훈은 지난해 8월부터 빗자루 퍼터라고 불리는 브룸스틱 퍼터를 사용하며 퍼팅이 좋아졌다. 하지만 이날 우승 고비 퍼팅은 넘지 못했다.
이로써 안병훈은 2016년 5월 취리히 클래식, 2018년 6월 메모리얼 토너먼트, 2018년 7월 RBC 캐나다오픈, 2023년 8월 윈덤챔피언십에 이어 개인 통산 다섯 번째 PGA 투어 준우승을 차지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사진제공-PGA투어] 소니 오픈 인 하와이에서 크리스 커크와 악수하는 안병훈
안병훈은 “전반적으로 경기력이 좋아졌다. 꺾이지 않고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안병훈은 지난주 개막전 더 센트리에서 4위에 오르며 세계 랭킹 52위로 8계단 뛰어오른 데 이어 이번 주 준우승으로 50위 이내에 들게 됐다. 3월 말 대회 결과를 반영한 세계 랭킹에서 50위 안에 들면 올해 마스터스 초청장을 받게 된다. 이경훈(33)과 김성현(26)은 나란히 합계 9언더파 271타로 공동 30위, 지난해 이 대회 우승자 김시우(29)는 8언더파 272타로 공동 42위에 자리했다.
안병훈은 지난해 금지 약물이 포함된 줄 모르고 감기약을 먹어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다. 3개월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아 지난해 8월 31일부터 11월 30일까지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는 “라운드를 하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달은 소중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안재형은 한국과 중국 핑퐁 커플인 안재형(59)과 자오즈민(61) 아들이다. 아마추어 최고 권위 대회인 US 아마추어 선수권에서 2009년 18세 나이로 우승했다. 2011년 프로 데뷔 후엔 2015년 유럽투어에서 1승, 2022년 PGA 2부 투어인 콘페리투어에서 1승만 거뒀을 뿐 PGA 투어에선 우승이 없었다.
그레이슨 머리. /AFP 연합뉴스
이날 기적 같은 버디 퍼팅으로 우승을 거둔 머리는 “여덟 달 넘게 술에 취하지 않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는 독특한 소감을 밝혔다. 그는 신인이던 2017년 PGA 투어 바바솔 챔피언십에서 첫 승리를 거두었지만, 알코올 의존증에 시달리고 교통사고로 부상을 입는 등 ‘사고뭉치’ 취급을 받았다. 2021년 소셜미디어에 “PGA 투어가 알코올중독에 빠진 자신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글을 올렸고, 당시 PGA 투어에서 같이 활동하던 케빈 나(41)를 두고는 “경기 진행 속도가 느려 같이 경기할 수 없다”고 조롱하는 글도 올려 물의를 일으켰다. 2022년 10월에는 버뮤다에서 스쿠터를 타고 가다 자동차와 정면으로 충돌해 얼굴과 손, 무릎을 심하게 다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PGA 투어가 선수들과 협의 없이 LIV 골프와 합병을 진행하자 제이 모너핸 PGA 투어 커미셔너에게 대든 적도 있다. 이 과정에서 선수 대변인 역할을 하던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제 역할을 못 한다며 욕설을 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머리는 대회 직전 “약혼녀와 부모님, 그리고 캐디인 제이 그린의 도움으로 이제는 코스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