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브레터’에 대한 감상
영화 ‘러브레터’에 대한 감상
나에게 정서적인 충격을 준 첫 번째 영화는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러브레터’였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에 이 영화를 보았는데, 이 영화의 복잡하고 섬세한 줄거리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난 그저 이 영화에 흐르는 아련한 공기를 느꼈을 뿐인데, 그것 만으로도 어린이에게는 가공할만한 예술적 체험이었다. 영화의 플롯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그로부터 몇 년 뒤다.
이 영화는 한 남자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죽은 남자의 아내는 그를 보고싶은 마음에 죽은 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얼마 후 편지의 답장을 받는다. 알고 보니 죽은 남편과 동명이인인 한 여자가 답장을 쓴 것이었는데, 심지어 그 여자는 죽은 남편과 동창이었다고 한다. 의미심장하게도, 동명이인인 그 여자는 아내와 똑 닮은 외모를 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일본 여배우 나카야마 미호가 동명이인인 여자, 극 중 이름 ‘후지이 이츠키’와 아내, 극 중 이름 ‘와타나베 히로코’를 1인 2역으로 연기했다. 외모가 닮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배우에게 1인 2역의 연기를 시킨 것이지만, 완전히 동일한 외모의 두 여자가 존재한다는 설정은 영화에 묘한 비현실성을 불어넣는다.
이와이 슈운지 감독은 크지쉬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라는 영화에서 ‘러브레터’의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같은 얼굴을 한 두 여자, 베로니카와 베로니끄의 이야기이다. ‘러브레터’의 나카야마미호와 마찬가지로, 이렌 자코브라는 여배우가 두 캐릭터를 모두 연기했다. 베로니카와 베로니끄는 같은 날 태어났고, 둘 모두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
둘은 상대를 만나지 않고도 서로의 존재를 어렴풋하게 인식한다. 이와이 슈운지 감독은 이 천연덕스러운 설정을 재해석하여 ‘러브레터’를 만들었다.
다시 ‘러브레터’로 돌아와서, 같은 얼굴의 두 여자는 편지를 통해 교류하며 각자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죽은 남편과 동명이인인 여자 후지이 이츠키는, 자신의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며, 와타나베 히로코의 죽은 남편, 즉 남자 후지이 이츠키가 자신을 짝사랑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내인 와타나베 히로코는, 죽은 남편이 어쩌면 자신의 외모 때문에, 즉 자신이 단지 여자 후지이 이츠키와 닮았다는 사실 때문에 그가 자신을 사랑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는 남녀 후지이 이츠키의 학창시절을 아름다운 음악과 영상으로 그려낸다. 학교 도서관의 커튼 틈 사이로 비춰지는 남자 후지이 이츠키의 수려한 외모는 어린 여자아이의 눈에는 마치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처럼 느껴질 만 하다. 그래서 어릴 때는 아내인 히로코의 입장까지는 헤아리지 못했다. 이제 와 생각하면 히로코는 남편을 잃었고, 남편의 사랑마저 그 진정성을 의심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슴이 시리도록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런 심정을 모두 안고 눈 내린 산에 올라 와타나베 히로코가 죽은 남편에게 소리치는 말이, 바로 ‘잘 지내고 있나요,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이다.
히로코의 말은 듣는 이에 따라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사사로운 감정이 제거된, 안부를 묻는 평이한 문장이기 때문에 해석은 관객의 몫이다. 원망으로 들리기도 하고, 체념으로도, 또는 이해와 용서로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그 대사를 여러 번 반복해서 되새기면, 히로코는 다른 뜻 없이 그저 죽은 남편이 잘 지내고 있는지, 자신은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대사에는 특별한 감동이 더해진다.
더욱 놀라운 것은, 히로코가 그 대사를 외칠 때, 감기 증세가 악화되어 위중한 상태로 병실에 누워있는 여자 후지이 이츠키도 같은 대사를 중얼거린다는 점이다. 히로코가 그 대사를 외치는 것에는 충분한 논리적 근거가 있지만, 죽어가는 여자 후지이 이츠키가 갑자기 그 대사를 중얼거리는 것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감독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에 왜 이런 작위적인 장면을 더했을까.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서, 폴란드에 사는 베로니카는 성악가로서 훌륭한 무대를 선보이던 중 심장마비로 쓰러져 사망한다. 베로니카가 땅 속에 묻히던 그때, 프랑스에 사는 베로니끄는 연인과 사랑을 나누던 중 갑자기 슬픔에 빠진다. 또 다른 나의 죽음을 직감한 그녀는, 그 이후 음악 공부를 멀리 하고 새로운 인생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와 달리 ‘러브레터’의 여자 후지이 이츠키는 죽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이와이 슈운지가 베로니카의 죽음을 되돌리고 싶어 만들어낸 결말처럼 보인다.
죽어가는 여자 후지이 이츠키가 히로코와 같은 대사를 중얼거리는 것은 그의 세계에서 두 여자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히로코는 여자 후지이 이츠키의 존재 때문에 상처 입었지만, 상처로 인한 슬픔에도 불구하고 죽어가는 그녀를 살려낸다. 그런 히로코 덕분에 이 영화는 슬픔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기억된다.